[역사 속 이야기]독일 국회의사당 방화사건 - 마리우스 판 데르 루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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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국회의사당방화사건은 공산당을 쳐부숴버릴 히틀러의 계락이었다.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은 나치 독일 정권의 수립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1933년 2월 27일 오후 9시 14분에 발생했다. 최초의 목격자는 국회의사당 근처를 지나가던 한 대학생이었다. 의사당을 지나던 중 창문이 깨지면서 불길이 치솟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목격자인 대학생은 즉시 화재를 신고했고, 베를린 소방대가 의사당에 도착했을 때는 의사당은 불타고 있었다. 


소방대와 동시에 도착한 경찰은 불길이 여러 곳에서 치솟으며 동시에 발화한 것을 발견했다. 그후 경찰은 수색중 발가벗고 건물 뒤에 움츠려 숨어 있던 마리우스 판 데르 루페를 발견했다.


루페는 네덜란드 출신의 공산주의자이자 실직 벽돌공으로 그 당시 최근에 독일로 넘어온 상태였다. 


아돌프 히틀러와 헤르만 괴링(당시 국회의장), 그리고 요제프 괴벨스 등이 곧 현장에 도착했고, 화재 현장을 보자마자 괴링은 즉각 화재가 공산주의자들의 소행이라고 선언했으며, 공산당 정치 지도자들을 체포하라고 소리질렀다. 


아직 화재 진압 중이었고, 괴링의 이 선언으로 화재 사건은 수사도 하기 전에 공산주의자들의 방화로 그냥 굳어졌다. 이때 히틀러와 함께 오페라 감상 중에 같이 현장으로 달려온 괴벨스도 그의 일기에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썼다


 히틀러는 비상 사태를 선언할 기회를 잡았고,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에게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1919년)의 인권 조항 대부분을 폐지하는 의회 방화에 관한 법령 (비상사태법)에 서명할 것을 강요하였다



 국회의사당 방화사건 배경


1930년 1월 30일에 히틀러가 연립 내각의 수상이 되었습니다. 수상이 된 직후 히틀러가 진행한 첫번째 행동은 힌덴부르크 대통령에게 국회를 해산해줄 것을 요청한 것이었다. 해산 후 재선거를 통해 정부 내에 나치당 의석을 늘리기 위한 목적이었다. 


힌덴부르크 대통령은 히틀러의 요구는 받아들여졌고, 총선거가 1933년 3월 5일로 잡혔다. 히틀러의 목적은 합법의 테두리에서 법적 모양새를 갖추어 민주주의를 무너드리는것이었죠. 전권위임법은 수상에게 의회의 동의를 받지 않고도 법률을 의결할 수 있도록 바이마르 헌법에서 허용된 특별한 힘이었다.


전권위임법은 본래 극단적인 비상사태에서 사용하도록 되어 있었고, 정부가 초인플레이션을 잡아 독일 을 구하기 위해 사실 1923년 ~ 1924년에 딱 한 번 사용된 적이 있었다. 이 법을 활성화기 위해서는 의회 의석 수의 2/3 이상 찬성이 필요했다. 1933년 1월, 나치는 의석의 단 32%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 의석 수로는 전권위임법을 가결하여 통과시킬 수가 없었다.


선거 기간 동안 나치는 독일에 공산주의 혁명이 임박했으며, 그걸 멈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전권위임법을 통과시키는 것뿐이라면서 신경질적 반공산주의 정강을 주장했다. 


히틀러의 선거 강령은 전권위임법을 통과시킬 수 있도록 나치의 의석 수를 더 늘려달라고 투표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이었다. 


전권위임법에 반대 투표를 할 수 있는 반대파들의 숫자를 줄이기 위해, 히틀러는 독일 공산당의 추방을 계획했다. 당시 독일 공산당은 새 의회가 개회하기 전 선거 후에 의석 수의 17%를 차지하고 있었다. 


의사당 방화 사건은 히틀러에게 공산당 추방에 속도를 낼 수 있게 해주었고, 공산주의 혁명이 임박했다는 나치의 주장을 확인시키는 데 이용되었다. 나치는 의사당 방화가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로 간주했고, 독일 국민들에게 공산당 통치 체제 하에서 겪을 소름끼칠 파멸에 대해 경고했다.



■ 요약


1933년 3월 실시될 총선거에서 반대세력의 진출을 막기 위하여 나치스는 이 사건을 독일공산당의 계획적 범행이라고 공표하고 다음날인 28일 '민족과 국가의 보호'를 위한 대통령긴급명령을 공포하여 공산주의자를 비롯하여 사회주의자·민주주의자에게 탄압을 가하였다. 


그 결과 나치스는 3월 5일 실시된 총선거에서 대승리를 거두었다. 그해 12월 국사재판소(國事裁判所)는 G.M.디미트로프 등에게 무죄판결을 내리고 현장에서 체포된 네덜란드인 좌익급진파 마리누스 루페 한 사람만 사형에 처하였다. 종래에는 이 사건을 나치스가 공산주의자를 탄압하기 위하여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현재는 루페의 단독범행이라고 주장하는 설도 있어서 그 진상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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